이 땅에 태어나서 (나의 살아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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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슨 일이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 평생을 언제나 그 시절 자전거 쌀 배달꾼 연습 때처럼 최선의 노력을 쏟아부으며 살아왔다. '요만큼'이나 '이만큼'이나 '요정도', '이 정도'는 내게 있을 수 없었다. '더 하려야 더 할 게 없는, 마지막의 마지막ㄲ/ㅏ지 다하는 최선.' 이것이 내 인생을 엮어온 나의 기본이다.

나는 지금도 고령교 공사의 시련을 운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공사를 따는 것에만 집착했지 다른 면에 대해서 치밀하게 계산하고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에 게을렀기 때문이다.

장기 공사는 연차적으로 분할 계약을 해야 인플레에 의한 손실을 막을 수 있다. 그때 이미 인플레의 기미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기껏 인플레가 된다고 해보았자 두 배정도가 아니겠는가' 하고,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일괄 계약을 한 것이 가장 큰 경솔함이었다.

이 공사를 통해 나는 '죽지 않고 신체 겅강하게 살아만 있다면 잠시의 시련은 있을지언정 완전한 실패란 없다'는 내 신념의 실현을 보았다.

이 두 공사를 하는 동안 우리는 정말 진지한 자세로, 배울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배우겠다는 자세로 미국인 기술자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 결심하면 단순하고 간단하게 생각해버리는 나는, 시멘트로 인해 빚어지는 공사 차질을 없애기 위해 1957년 시멘트 공장 설립 계획에 착수했다.

누구나 적당히 게으른 재미를 보고 싶고 편한 즐거움을 갖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 '적당히 적당히'라는 적당주릐로 각자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을 귀중한 줄 모른 채 헛되이 낭비하는 것보다 멍청한 짓은 없다고 생각한다.

기업이란 냉정한 현실이고, 행동함으로써 이루고 키워 나가는 것이다. 그저 앉아서 똑똑한 머리만 굴려서 기업을 키울 수는 없다. 똑똑한 머리만이 아니라 몸소 행동해야 한다. 일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야 할 때,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벌떡 일어나 뛰어나가는 사람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미적미적 한 시간, 두 시간, 혹은 하루, 이틀 뒤로 미루는 사람이 있다.

그냥 소화만 해낸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이 다 같이, 모든 건설 공사를 자국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향상을 도모, 빠른 시일 안에 선진 기술을 배워 우리 것으로 만들고 축적했기 때문에 근대화 과정에서 건설업이 국가 산업을 주도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손실이 손실만으로 끝나버리면 그것은 말 그대로 손실이다. 그러나 손실 대신 얻은 것이 있으면 그것은 손실이 아니라 번 것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한다. 어느 때는 돈으로 본 손실보다 돈 아닌 것으로 얻은 것이 더 큰 벌이일 수 있다.